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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건전한’ 통화질서는 시장작동의 전제조건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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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12. 25. 17:50

김이석 논설실장
논설심의실장
2023년이 저물고 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직장인들이 식당에서 점심값으로 지불하는 비용이 상당히 올랐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소위 '런치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또 주부들이 장을 보면서 지불하는 가격도 소위 '슈링크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이 오른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8일(현지시간) OECD 소속 35개국의 경제성적을 매기면서 우리나라를 그리스에 이어 2위로 평가했다.

이런 국제적 비교는 여러 곳을 동시에 살아볼 수 없는 한국의 시민들로서는 잘 피부에 와닿지는 않지만 〈이코노미스트〉의 설명은 이렇다. "인플레이션, GDP 성장률, 고용 증가율, 주가 수익률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는데" 한국은 성장률은 높지 않지만 "선제적인 금리인상 덕분에 물가가 오르지 못하게 막았다"는 것이다. 그리스가 1위를 기록한 것은 시장친화적 개혁을 통해 디지털 전환을 잘 실천하고 시장경쟁을 강화함으로써 투자자들을 다시 불러 모은 것이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평가가 가지는 의미는 '건전한 통화질서'가 시장경제 번영을 위한 중요한 전제라는 사실이다. 〈이코노미스트〉가 근원물가를 비롯해서 인플레이션에 초점을 두고 성과를 평가하는 이유는 '건전한' 통화질서가 잘 유지될 때 시장경제가 잘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화를 자의적으로 팽창시키는 정책은 가격의 신호기능을 왜곡시킴으로써 시장경제를 파괴한다. 우리는 경제원론을 통해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을 배운다. 만약 어떤 가격에서 어떤 재화의 공급이 그 재화에 대한 수요보다 모자라면, 가격이 오른다. 그러면 수요량은 줄고 공급량은 늘어나서 다시 수요와 공급이 맞춰지는 상태로 경제가 향하게 된다.

그런데 통화가 갑자기 늘어나 이것이 부동산 시장에 흘러들어 가서 부동산을 사기 시작하여 가격이 올랐다고 해보자. 그러면, 사람들은 어디까지가 수요와 공급 간의 괴리에 따른 것인지, 또 어디까지가 통화 팽창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자 공급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난리를 치지만, 가격 상승분 중 상당부분은 통화 팽창에 따른 '거품'일 수 있다. 통화공급이 다시 정상화되면 다시 가격도 진정될 수 있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당장 가격을 통제하고 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정책을 실행하기보다는 '건전한 통화'를 유지하도록 하면서 부동산 가격의 신호가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도록 하는 것이 더 부동산 시장이 더 잘 작동하게 만드는 시장경제에 부합하는 조치다. 그러나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게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전세와 매매를 포함한 부동산가격이 오히려 더 치솟았었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서도 실제로는 내용물을 줄이면서 똑같은 가격을 받는 소위 '슈링크플레이션' 단속에 나서고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정확한 정보 표시 요구는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통화를 잘 관리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통화가 팽창한 상태에서 각종 물가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이런 상황에서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정부가 강력하게 압박한 것은 문제다. 그렇게 하면 생산자들은 내용물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신참자(新參者)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통화관리를 잘해서 한국 정부가 〈이코노미스트〉로부터 그리스를 제외하고는 최고의 성과를 냈다고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시장 진입을 더 쉽게 해서 경쟁을 활성화하고 아울러 통화관리를 더 잘하기보다는 정부가 '슈링크플레이션' 상황에서 물가를 직접 통제하겠다고 나서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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