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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호 칼럼] 英 브렉시트 사태가 대한민국에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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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1. 0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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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호 칼럼니스트, 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새해 벽두부터 나라 안팎으로 여러 대형 악재가 덮치면서 혼란스럽고 뒤숭숭하기 짝이 없다. 희망과 기대를 담은 덕담이 오가야 마땅한 때에 가히 역대급 재앙이라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 안보, 경제, 사회 등 제반 상황이 녹록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사태를 반추해 본다.

최근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영국이 국경 통제 강화와 이민자 유입 억제 등을 위해 유럽연합(EU)에서 탈퇴(브렉시트)한 후 지난해 영국으로 들어온 사람이 나간 사람보다 74만5000명 많아 순(純)이민자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 해의 순이민자수 37만명과 비교해 2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이민자 증가는 영국의 부족한 노동력과 재원을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공공서비스 지원 능력, 임금 약화 등 불만이 커지면서 현재 이민자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국경 강화와 이민자 통제를 약속한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던 이들에게는 이러한 현실이 달갑지 않다. 브렉시트를 추진한 보수당은 이로써 이민자 유입을 막을 수 있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이와 정반대의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오죽하면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브렉시트의 배신'이라고 꼬집었을까.

브렉시트 후유증을 앓는 영국의 처지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고물가와 경기침체, 아일랜드에 경제 역전, 통관 지연 등 뿔난 민심으로 '브레그렛'(Bregret, 브렉시트를 후회)이 증폭되면서 EU 재가입 찬성 여론이 58%를 기록했다.
20일 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경제 금융지표를 토대(2022년 4분기~2023년 3분기)로 종합적인 경제성적을 발표한 자료가 영국 경제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근원 물가상승률, 인플레이션 확산수준, GDP성장률, 고용증가율, 주가상승률 등 5가지 지표로 종합정수를 매긴 결과, 그리스가 1위, 한국 2위, 미국 3위, 캐나다 6위 등 순이었다. 영국은 아일랜드(11위)에 크게 뒤진 30위에 그쳤다.

또한 최근 발표된 OECD와 IMF(국제통화기금)의 주요국가 경제 성장 전망도 마찬가지. OECD의 세계 평균은 2023년 3.0%, 2024년 2.9%인데, 영국은 각각 바닥수준인 0.5%, 0.7%(한국은 1.4%, 2.3%). IMF 자료 역시 세계 평균은 2023년 3.0%, 2024년 2.9%인데, 영국은 각각 0.5%, 0.6%(한국은 1.4%, 2.2%).

여기서 영국의 브렉시트 추진 과정을 복기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4년간의 대소동이 도로(徒勞)가 된 건 예삿일이 아니다. 2015년 5월,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하면 2017년까지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전격적인 대국민 약속을 한다. 자신은 EU 잔류파이면서도 보수당의 재집권을 위해 브렉시트 카드를 꺼내든 것.

이후 지역 계층 당색 등에 따라 영국 전역이 극심한 갈등과 대립으로 여론전과 시위 등 몸살을 앓더니 2016년 6월,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노동당 조 콕스 하원의원(41)이 피살되는 참극을 빚었다.

결국 같은 달 24일, 국민투표 결과 찬성 51.9% 대 반대 48.1%로 통과됐다. 당초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을 깬 반전이었다. 실제 EU와 이혼도장을 찍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EU와 관계를 완전히 끊는 하드 브렉시트를 할지, 분담금을 내고 일정수준의 혜택은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할지를 놓고 여론이 또 갈라졌다. 아예 EU탈퇴를 없던 일로 하자는 목소리도 컸다.

혼란을 수습할 구원투수로 등장한 테레사 메이 총리는 2017년 EU에 탈퇴의사를 통보하고 이듬해 11월 브렉시트 협상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EU 협의안이 하원에서 잇따라 부결되면서 브렉시트 시한은 두 차례 연기됐고, 메이의 후임자인 보리스 존슨 총리는 합의를 못 보는 '노딜 브렉시트'를 감수하더라도 EU를 탈퇴하겠다고 했다.

2020년 1월 31일 밤 11시, 영국은 마침내 EU회원국에서 공식 탈퇴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 가결 후 3년 7개월 동안 세계경제를 불확실성 속으로 몰아넣었던 브렉시트가 완결된 것이다.

브렉시트는 2010년대 초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하면서 불거졌다. EU회원국이라는 이유로 연간 100억 파운드가 넘는 분담금을 감당하며 재정이 부실한 다른 회원국에 돈을 지원하는 데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이민자 유입으로 일자리가 갈수록 줄고, EU의 온갖 규제를 적용받는 점도 불만을 키웠다.

그러나 EU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간 영국의 장밋빛 꿈은 실패라는 게 경제전문가는 물론, 많은 영국 국민들의 공통된 평가다. 브렉시트 준비과정에만 44억 파운드(약 6조8000억원)가 들었는데, 1600조원의 금융자산이 이탈하면서 유럽 금융허브의 지위를 잃은 것은 물론 국가적 생산성 손실규모 290억 파운드(45조원), 기업투자 규모 G7 평균보다 19% 하락, EU시절보다 GDP 4% 축소 등 후과가 엄청나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참사에다 국민적 자존심 손상 등 명분과 실익 양쪽 모두 놓쳤다는 지적이다.

세계사적 흐름을 외면한 채 문을 닫아걸고 개방과 역동성을 상실한 영국의 실패는 정치지도자의 비전과 리더십 부재, 정략적인 단견(短見)과 소리(小利), 국민들의 안이한 판단이 국가 사회를 어떻게 추락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엘리트 정치인들의 타협할 줄 모르는 정치문화, 국가의 명운이 걸린 결정을 변덕스러운 여론에 맡겼던 포퓰리즘 정치가 부른 대가와 후유증은 오래도록 소환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류석호 칼럼니스트, 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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