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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위대한 민주정치의 리더십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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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1. 24. 17:58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강성학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리더십이란 말은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모든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십은 오늘날 아주 새롭게 유행하는 말이다. 최근의 한 조사는 192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총 211가지의 리더십에 대한 정의를 수집했다. 또 다른 조사는 리더십을 다룬 책들이 6000권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가장 최근 2022년 99세의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가 출간한 책의 타이틀도 <리더십: 세계전략의 6개 연구>(Leadership: Six Studies in World Strategy)였다.

◇ 리더십은 정치의 핵심
누가 뭐라고 해도 리더십은 정치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정치지도자는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훈육되는 것일까? 만일 위대한 지도자가 모두 타고나는 것이라면 우리는 유전학이나 유전공학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타고나기보다는 더 많이 교육과 실제 삶의 경험을 통해 훈육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를 탐구한 철학자나 실제로 존재했던 위대한 지도자를 연구한 역사가에게 의존할 수 있다. 즉 역사야말로 리더십 습득의 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최선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악을 막는 정치제도이다. 따라서 민주국가의 탁월한 정치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교양교육이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견지에서 미국의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의회에 대학의 설립을 촉구했고 제3대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아예 자신의 재산을 털어 대학을 설립했다. 왜냐하면 일찍이 정치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가 간파했던 것처럼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인격과 판단의 정도는 다른 일반 시민들에 요구되는 것보다도 더 크기 때문이다.

◇ 크세노폰과 플라톤의 이상적 리더십
역사적으로 기록상 최초로 최고의 지도자로 인정된 사람은 누구일까? 고대 그리스인들의 성경에 해당하는 기원전 8세기 호머(Homer)의 시(詩)들인 <일리아드>(lliad)에 의하면 아킬레스(Achilles)가 최초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다. 영웅이란 자기의 동포들을 돕고 동포와 전우들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킬레스는 놀랍게도 아주 야만적이고, 이기적이며 반역적이다. 그는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 중 가장 용맹한 전사(warrior)일지는 몰라도 결코 위대한 최고지도자나 왕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의 롤 모델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왕, 혹은 영웅으로 간주되는 인물은 일반적으로 기원전 6세기(BC 580~530년경)에 처음으로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로스 대왕(Cyrus the great)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기원전 4세기경 소크라테스의 제자로서 철학자요 역사가로 알려진 크세노폰(Xenophon)이 쓴 <키로스의 교육>(Cyropaedia)이라는 사실상 하나의 정치적 로맨스(romance)로 자기를 칭송하고 열렬한 신민들에 대한 자애로운 전제군주로 지배하도록 훈련된 이상적 지배자의 교육과정을 서술한 것이다. 이 책은 중세에 "군주들의 거울들"이라고 알려진 중세작가들의 모델이 되었다고도 한다.

크세노폰의 동시대에 이상적 국가지도자의 모델을 제시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물론 철학자인 플라톤이다. 그도 소크라테스의 제자로서 역사가 크세노폰과는 달리 그의 <공화정>(Republic)에서 가장 이상적인 국가지도자로 "철인 왕(philosopher-king)"을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 정치세계에서는 플라톤의 철인 왕이 아니라 크세노폰의 키로스 대왕이 후세의 롤 모델이 되었다. 그러한 고전적 지도자들 가운데에는 알렉산더 대왕, 로마의 스시피 아프리카누스(Scipie Africanus)와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가 포함되었다. 아버지 케이토(Cato the Elder)에 의하면 로마는 전쟁 영웅이 롤 모델이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철학이 인간을 나약하게 여성화한다고 반대했다. 그들은 오직 영웅적 전사들만이 로마 공화정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크세노폰은 <키로스의 교육>에 머물지 않고 <히에로>(Hiero)의 대화편을 통해 당시 고전철학자들의 핵심적 주제인 왕(king)과 폭군tyrant)의 구별에 참여했다. 여기에서 그는 시인 시모니데스(Simonides)의 입을 통해 폭군이 비참한 삶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정을 베풀 것을 권유했다. 15세기 말, 16세기 초에 와서 피렌체의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크세노폰의 가장 잘 알려진 헌신적인 독서가였다. 마키아벨리는 특히 크세노폰의 <키로스의 교육>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며 키로스의 기만술에 의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Christopher Nadon, Xenophon's Prince: Republic and Empire in the Cyropaedia, Berkeley: UC Press, 2001).

◇ 마키아벨리·클라우제비츠 리더십론
그리하여 마키아벨리는 근대의 왕들로부터 전통적으로 윤리적인 덕목들을 모두 제거해 버렸다. 즉 마키아벨리는 윤리적인 왕(king)과 무도한 폭군(tyrant)의 구별과 차이를 없애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왕이나 폭군이라는 용어 대신에 제3의 용어인 <군주>(Prince)를 사용했다. 그에게는 오직 효과적으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장한 예언자(an armed prophet)"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키로스 대왕이 정당한 세습적 왕이었다면 마키아벨리의 새 군주는 사실상 혁명가였다. 그는 자신의 정통성을 스스로 확보해야만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고전적 폭군처럼 그의 통치는 두려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정치철학이 윤리나 도덕철학과 완전히 결별하고 마키아벨리의 소위 근대 과학적 정치철학이 탄생한 것이다.

그 후 유럽은 마키아벨리와는 무관하게 "왕권신수설(the Devine Right of King)"에 입각한 절대군주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로 왕권신수설이 추방되고 새로운 주권재민의 원칙에 따라 절대군주들은 입헌군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왕들은 여전히 기독교적 윤리를 존중했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군주"였다. 그리하여 왕과 폭군의 차이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정치는 군주 홀로가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추세는 일찍이 1830년대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Tocqueville)이 간파했던 것처럼 역사의 돌이킬 수 없는 원동력이었다. 그리하여 칼 폰 클라우제비츠도 1831년에 출간된 <전쟁론>(Vom Kriege)에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변질된 근대 국민전쟁에서 나폴레옹과 같은 "군사천재(military genius)"를 칭송했던 것이다. 그의 군사천재는 결국 마키아벨리의 비르투(virtu)를 소유한 장군-정치가(a general-stateman)였다.

◇ 민주지도자의 롤 모델: 워싱턴, 링컨 그리고 처칠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은 리더십 이론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군주들을 "독재자(dictator)"로 규탄하면서 사악한 전쟁 지향적 독재자와 선한 평화 지향적 민주지도자 간의 명확한 구별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왕과 폭군이라는 용어가 아닌 새로운 독재자와 민주주의 지도자로 구별되었으며 그 후 이것이 일반적인 지도자의 분류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들의 마음속 지도자는 민주 지도자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이후 용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독재자는 결국 고전적 폭군과 동일하게 인식되었다.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그것이 성취하는 것보다 그것이 예방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찬양할 만하다. 이것은 참으로 최선을 달성하기보다는 최악을 막는 근대적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민주지도자의 롤 모델로 삼을 만큼 충분히 연구되고 또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위대한 민주 지도자는 누구일까? 고대 민주적 도시국가 아테네의 가장 위대한 민주 지도자로서는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하는 페리클레스(Pericles)가 있다. 그는 독특한 속성을 가진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는 군인이며 전략가의 지위에 있었지만 그는 더 나아가 보기 드문 재능을 가진 탁월한 정치가였다. 그는 스스로 정책을 결정하고, 아테네 시민들이 그것을 채택하고, 그리고 그것에 헌신하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의 지나치게 야심적인 사업을 억제하고, 그리고 그들이 자신감을 잃었을 때에는 용기를 불어넣었다. 어느 아테네 지도자들도 할 수 없었지만 오직 그는 아테네 시민들이 일관된 정책을 고수하도록 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죽기 전 마지막 연설에서 정치가에게 필요한 속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조국을 사랑하고 부패하지 않을 것."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그 누구도 페리클레스만큼 그러한 속성을 소유하지는 못했다고 그가 죽은 직후 그를 칭송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는 우리 시대와는 너무나 먼 고대 직접 민주주의 시대의 지도자로서 오늘날 그의 전 생애를 연구하는 데에는 기록의 한계가 분명하다. 반면에 우리는 민주주의 정치가의 롤 모델은 근현대 민주국가인 미국과 영국의 역사적 지도자들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우선 최초의 근대 민주국가를 세계적 위대한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한 미국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우선 미국 사우스 다코다(South Dakoda)의 러시모어 바위산(the Mount Rushmore)에 얼굴이 새겨진 미국의 큰 바위 얼굴의 대통령들이다. 그들은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18세기 최초의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롤 모델이 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야말로 우리 시대에도 최선의 롤 모델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최초의 대통령이었기에 후세의 롤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늘 최선의 모범적인 길을 가려고 노력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근대 민주주의의 황무지에 민주공화국 지도자의 올바른 길을 최초로 걸어가 후임들을 위해 길을 낸 최초의 정치 지도자로서 미국의 후임 대통령들에게 선구적 롤 모델이 되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을 항상 롤 모델로 삼았지만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고 미국의 노예를 해방시킴으로써 워싱턴 대통령을 능가하는 역사적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도 롤 모델이 되고도 남을 20세기 최고의 위대한 민주 지도자였다. 처칠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스트 전체주의와 싸워 이기고 전후 냉전시대 초기에는 공산 전체주의와 싸운 유일한 20세기의 지도자였다.

처칠의 롤 모델은 18세기 프랑스 루이 14세의 야심을 블렌하임(Blenheim) 전투에서 저지한 존 처칠(John Churchill), 즉 말보러 공작(Duke of Marlborough)이었지만 처칠 역시 자신의 롤 모델을 능가하는 역사적 평가를 받았다.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역사적 지도자들이 어찌 조지 워싱턴과 윈스턴 처칠뿐이겠는가? 우리 한국인들이 그들을 찾아 열심히 학습할 때 머지않아 우리도 위대한 세계사적 지도자들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본란의 기고는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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