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이병욱 칼럼] 국민과 기업을 배려하는 규제와 정책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m3.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307010003628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3. 07. 18:00

이병욱
이병욱 (SDMI고문·경영학박사)
지난해 한 신문사의 편집인과 은퇴한 전문경영인 등이 함께 공기업의 혁신과 규제개혁의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신문사 편집인은 국회입법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오래 준비한 국회의원의 평가 작업을 중단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국회의원들은 주기적으로 자신들의 의정활동 실적을 유권자들에게 홍보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업적 가운데 중요한 것은 법안 발의 실적이나 지역 공약예산 확보 실적 등이다. 그래서 신문사 편집인도 처음에는 그들의 입법 발의나 정책 제안 실적이 많으면 의정활동을 잘한 것으로 평가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전문가 등과 국회의원의 입법추진 실적과 정책제안 건수 등에 대한 조사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에 평가 잣대에 대해 다른 견해가 제기되었다. 법안 발의 실적이 많다고 의정활동을 잘한 것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법안 발의 건수는 적더라도 국민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는 법률이나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법률이나 규제 가운데 시대착오적이고 국민과 기업에게 부담만 주거나 특정 계층에게만 혜택을 주는 규제나 정책을 과감하게 정비하는 것이 경제와 민생에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국가 예산을 낭비하고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정감사를 제대로 하는 정치인을 높이 평가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크게 공감한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유권자의 표심만을 의식한 정치를 한다. 또한 공무원이나 이해관계자에 포획되어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것에 소극적이다.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순간 다음 선거에 사활을 걸기 시작한다. 그래서 기득권층의 오해를 살까봐 규제 혁파와 같은 정책에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목소리가 큰 기득권층을 자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설령 시대착오적이고 국민의 불편을 주는 규제일지라도 먼저 나서서 없애자고 나서는 정치인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그 대신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 예산을 쓰는 일에는 관심을 갖는다.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면 정부와 공조직의 인력이 늘어나고 행정예산도 증가하지만 이것은 업적으로 간주된다. 국민의 세 부담은 커지지만 공조직 종사자들이나 소수의 목소리 큰 정책수혜자들은 환호한다. 하지만 규제와 정책은 적을수록 좋다. 정치 과잉의 시대나 사회는 국민과 기업들이 힘들다. 무임승차가 적고 공유의 영역이 작을수록 사회나 조직은 물론 국민의 부담도 줄어든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제대로 하게 하려면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 정부조직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정감사도 품격 있게 제대로 하도록 국민과 언론이 감시를 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팩트 중심으로 핵심 현안을 예의 바르게 질의하고 국무위원이 성실하게 답변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IMF 금융외환위기 전에 미국 의회의 규제 전문가들과 2주간 세미나를 워싱턴 D.C.에서 가진 적이 있다. 그들이 들려주는 규제개혁의 메시지는 아직도 선명하다. 미국 의회예산관리처(OMB: Office of Management & Budget)는 모든 입법안이나 정책 제안에 대해 규율하는 장치를 잘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규제와 정책의 도입을 방지하고 국민의 세 부담을 줄여 주고 있다.

우선 모든 규제나 정책의 도입 시 여러 대안들을 동시에 준비하고 각각의 대안에 따른 비용-편익 분석을 철저히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비용-편익 분석 결과는 이해당사자들에게 공개하고 반드시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형식적으로는 의견수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비용-편익 분석의 내용까지 공유하고 철저하게 따져보지는 않는다. 심지어 몇 년 전부터는 예비타당성 검토까지 생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은 대안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결과를 토대로 공개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여러 차례 충분히 갖는다. 탈원전·선거제도 변경, 의료개혁 등과 같은 중대한 제도개혁안에 대해서는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국민들과 구체적인 수치를 갖고 토론하고 설명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적 대안이 마련되면 그다음 단계에서는 어느 기관에서 이를 집행할 것인지와 기대효과 등에 대해서도 철저히 분석한다. 이와 함께 규제와 정책의 집행에 소요되는 재원의 조달방안과 기대효과에 대해서도 철저히 검증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철저한 과학적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규제의 틀이다. 규제의 틀을 '원칙 금지-예외 허용'(Positive system)에서 '원칙 자유-예외 규제'(negative system)로 전환해야 한다. 수십 년째 전문가들이 개선을 요구해 오고 있지만 공직자들은 시늉만 내고 있다.

우리나라 규제의 틀인 포지티브 시스템에 대해 미국 의회 전문가는 사회주의식 규제라 말한다. 이러한 원칙 금지의 규제 틀은 민간의 창의력을 제약하고 불필요한 행정규제 인력과 규제순응 비용만 유발하게 된다. 국민을 배려하지 못하는 나쁜 규제형식이다.

국민을 배려하는 규제개혁을 하려면 규제완화를 넘어 규제의 틀을 '원칙 자유, 예외적으로 규제하는 틀'로 하루라도 빨리 바꾸어야 할 것이다. 공익상 꼭 규제할 것을 제외하고는 국민과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 과잉과 공권력 남용의 폐해를 최소화하면서 민간의 활력을 제고하는 길이다.

이병욱 SDMI고문·경영학박사

※본란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