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구순의 조각 거장...“동서남북 작가라 불러주세요”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m3.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320010011185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3. 20. 10:42

김윤신 개인전 내달 28일까지
목조각 연작·회화 작품 선보여
남미·프랑스 등지 오가며 활동
[Kukje Gallery] Kim Yun Shin_Artist Profile
우리나라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89)은 "예술은 끝이 없고 완성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우리의 삶이 바로 예술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국제갤러리
"아르헨티나의 무한한 자연 속에서 자란 크고 튼튼한 이 나무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 가구나 기계에 많이 쓰이죠."

1980년대 중반 남미로 이주해 아르헨티나에서 40년간 뿌리내리며 작업한 우리나라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89)은 1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작품 재료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구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주름도 별로 없고 건강해 보이는 작가는 한 시간 내내 전시장을 돌며 자신의 작품 세계에 관해 얘기했다. 장승 같기도 하고 돌맹이를 쌓아올린 것 같기도 한 형상의 목조각 작품들은 제목이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 分一)'이다. 둘을 합하여도 하나가 되고, 둘을 나누어도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저는 나무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작업하기 전에 재료가 주어지면 며칠을 두고 봅니다. 단단한지 연한지, 껍질이 있는지, 어떤 향이 나는지 완전히 파악하면 전기톱을 들고 잘라내기 시작하지요. 또 하나의 생명을 잉태해내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 작품 제목을 이렇게 달았습니다."
[Kukje Gallery] Kim Yun Shin_installation view_6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윤신 개인전 전경./국제갤러리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1969년 귀국한 그는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던 조카의 권유로 1984년 그곳에 가게 된다. 이어 멕시코, 브라질에 한동안 머물기도 했다. 2008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윤신미술관을 건립했으며, 2018년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 김윤신의 상설전시관이 설립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르헨티나가 어디인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가보니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 곳이더라고요. 비행기로 씨앗을 뿌릴 정도로 땅이 넓었고, 특히 나무들이 너무 신기했어요. 처음 그곳에서 조각 작업을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웬 여자가 전기톱을 들고 나타나니 놀라더라고요."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목조각 연작과 함께 꾸준히 지속해온 회화 작업 등 총 50여 점을 선보인다. 알가보로 나무, 라파초 나무, 유창목, 올리브 나무 등 다양한 원목이 그의 손을 거쳐 다채로운 형태로 변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톱질을 통해 드러난 나무의 속살과 원래 모습 그대로 살려둔 나무의 거친 껍질이 이루는 시각적 대조가 눈여겨볼 부분이다.

[Kukje Gallery] Kim Yun Shin_installation view_10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윤신 개인전 전경./국제갤러리
이번에 공개된 그의 회화 작품들은 아르헨티나의 대지, 그 특유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연상시킨다. 남미의 토속색과 한국의 오방색에서 영감 받은 원색의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이프로 물감을 긁는 기법으로 원시적 에너지를 표출하거나, 물감을 묻힌 얇은 나무 조각을 하나하나 찍어내 구사한 화면은 강인한 생명력의 본질을 찬양한다.

김윤신은 기자들에게 자신을 '동서남북 작가'로 부르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며 작업한 자신의 작품세계를 응축한 말이다.

"저는 동서남북 어디로 가나 작업하는 작가입니다. 건강이 유지되는 한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 예술은 끝이 없고 완성이라고 말하기기 어렵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우리의 삶이 바로 예술이 아닌가 합니다."

전시는 4월 28일까지.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