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윤석명 칼럼] 국회 연금특위, 여·야·정 협의체 구성해 ‘구조개혁’ 논의하길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m3.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922010011770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9. 22. 17:24

OECD서 평가한 韓연금개혁 <12>
2024090801000815400048891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지난 4일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연금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개혁안조차 발표하지 않았다고 그동안 온갖 비난을 받아왔던 터라, 만시지탄이기는 하나 매우 잘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연구자인 필자가 볼 때는 개혁안으로서 부족해 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이번 연금개혁안 발표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한 기준이 되는 개혁안이 없다 보니 그동안 국회가 연금개혁 논의를 주도해 왔다. 표를 먹고사는 정치 집단이 연금개혁 논의를 주도하다 보니 연금 논의가 산으로 가버렸다. 국회가 주도한 공론화위원회가 너무도 어이가 없는 결론을 내놓아서다. 황당한 결론이 나온 배경에는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핵심자료를 삭제하여 시민대표단을 학습시킨 것에 기인한다. 시민대표단 다수가 선택한 '소득대체율 50%-보험료 13%' 안은 2005년생(14.8%)과 2035년생(36.1%)의 생애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이 21.3%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이 수치를 모르고 시민대표단이 의사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정부안이 없다 보니, 국회 논의를 통해 '개혁안이라고 나온 안'이 문제가 많음을 국민에게 알릴 수 있었던 측면이 있었다. 뒤늦게 정부안을 내는 데 부담은 많았겠지만, 제대로 된 안을 낼 여지가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특히 지난 26년 동안 단 1%포인트도 올리지 못했던 국민연금 보험료를 13%까지 4%포인트 올리는 안을 정부가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국회에서 13%까지는 올릴 수 있다는 여지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결과론이기는 하나, 정부가 먼저 안을 내지 않고 있다가 결국 안을 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자 한다. 정부안 중에서 주목할 부분, 특히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 국민연금 '의무납입연령 5년 연장' 검토다. 그동안 정부는 의무납입연령(사용자가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는 기간) 연장에 소극적이었다. 고령자 고용에 따른 사용자 측의 반발도 있었으나, 핵심적인 이유는 우리 국민연금이 낸 것보다 많이 받는 제도로 운영이 되다 보니, 의무납입기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연금 재정불안정이 심화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의무납입기간 연장 검토를 정부가 제시한 것은 매우 적절한 접근으로 보인다. 재정안정화 조치를 통해 재정불안정 요인을 축소해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모적인 연금 논쟁에서 '실보다 득이 훨씬 많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제안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통상 OECD가 18개월 주기로 발간하는 한국경제 검토 보고서는 한국의 이중적인 노동시장 구조와 경직적인 임금체계 해소를 거듭 주문해 왔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가 노동시장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일부 OECD회원국에서는 비정규직의 월급이 정규직보다 더 많다. 비정규직이 직장을 잃을 확률이 정규직보다 더 높다 보니 위험 보상 차원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규직·비정규직의 큰 월급 차이에 덧붙여 각종 복지 혜택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괜찮은 직장에 비정규직으로 다니는 근로자는 아예 공식적인 노동시장으로 진입하지 못한 더 열악한 위치에 있는 근로자에 비하면 그나마 더 나은 상황에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다.

노동 생산성과는 별개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특히 좋다는 직장에서 보편화되어 있다 보니, 정년을 연장하기가 어렵다. 경직적인 임금체계가 초래하는 개별 기업 차원의 문제 외에도 취업 빙하기에 놓인 청년층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서다. 60세까지 일했으면, 이제 청년에게도 일할 기회를 달라는 사회적 압력이 상당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러니 정년 연장 이야기가 쉽게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OECD 회원국 중에서 노인 빈곤율이 최고라는 말은 그렇게도 자주 인용하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경직적인 임금체계를 해소하라는 OECD 권고는 모르쇠로 일관해 온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이제 저출생·고령사회라는 높은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다. 하루빨리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은 노후소득보장 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령 근로자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퇴직 후 재고용으로 65세까지 일할 수 있게 된다'면 현재 59세인 국민연금 의무납입연령을 64세까지 5세 더 연장할 수 있다. 5년 더 가입하면 연금 소득대체율이 13% 늘어난다. 이미 일본이 하고 있는 것처럼 장기적인 관점, 즉 20∼30년 뒤에 가서 의무 납입연령을 70세까지 연장한다면 소득대체율 26% 인상 효과가 있다. 정치권의 소득대체율 45% 또는 50% 논쟁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의무납입연령 5년 연장이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중고령 근로자들에게 5년 더 일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추가적인 근로 소득 외에 국민연금에 5년 더 가입함에 따른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높은 노인 빈곤율을 핑계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것은, 후세대에게 막대한 부담을 떠넘기면서도, 제대로 된 효과는 40년 뒤가 돼서야 나타나는 하수 중의 하수 대책이다. 진정 국민의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위해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한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의무납입연령 연장 검토와 함께 제시된 퇴직연금 가입 의무화 역시 노사 합의 사항인지라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고령근로 장려, 퇴직연금 강제화, 특히 청년층 대상의 개인연금 참여 유인 제고를 위한 다양한 세제 지원책 마련을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러니 국회에 여러 상임위가 참여하는 특위 설치가 불가피하다는 거다. 정책당국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여·야·정 협의체 구성도 불가피하다.

OECD가 그동안 권고해 온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서라도 국회 특위 설치가 필요하다. 국회에 관련 특위를 만들어 제대로 된 연금개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회 기본 책무에 부합하는 길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