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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식의 질서경제학] 누구를 위한 정년연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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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1. 2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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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식 한국항공대학교 명예교수·전 질서경제학회 회장
정년연장 문제가 사회 현안의 하나가 되고 있다. 노동계는 이미 수년전부터 정년연장을 요구해왔다. 현대차, 포스코 등 대기업 노조를 비롯해서 공무원노조, 교원노조 등 공공부문 노조가 정년연장을 요구해왔고, 한국노총은 정년연장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도 노조의 요구에 동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5건의 정년연장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 힘도 내년 초 관련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은 현 60세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는데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정부는 정년연장 문제에 대해서 그동안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정년연장 요구는 급속한 고령화와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이미 천만 명을 넘었고, 연말쯤 전체 인구의 20%를 초과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19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어 노동력 부족이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정년(60세)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현재 63세, 2033년에는 65세) 사이의 괴리로 인해 퇴직 후 일정 기간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40.4%에 달하며, 대다수 퇴직자가 경제적 이유로 재취업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60대 취업자 수는 50대뿐 아니라 20대와 30대 취업자 수를 넘어섰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70세 이후까지도 경제활동을 지속하길 희망하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구조 변화, 노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노조와 정치권에서 정년연장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년연장은 명확한 한계가 있다. 대상이 제한적이고,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첫째, 정년이 연장되면 그 혜택은 소수의 고임금 근로자에게만 돌아간다. 2023년 기준, 5인 이상 사업장 중 정년제가 도입된 곳은 31%, 여기에 속한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4.5%이다. 이 중 실제 정년연장의 혜택을 받게 되는 근로자는 전체의 약 10%에 불과하다. 이들 대부분은 고임금, 좋은 근로조건, 고용안정을 누리는 유노조,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근로자들이다. 반면,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놓인 나머지 90%의 근로자는 정년연장 혜택에서 제외된다. 이들 중소기업, 비정규직, 플랫폼 근로자들에게 정년연장은 다른 나라 이야기다. 결국 정년연장은 근로자간 격차를 심화시키고,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근로자가 대기업, 정규직으로의 이동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게 된다.

둘째, 정년연장은 고용불안을 야기한다. 2013년 법정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이후, 정년퇴직자는 13만 2천 명 증가했지만, 조기퇴직자는 두 배 가까운 24만 3천 명 증가했다. 이는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명예퇴직, 권고사직, 경영상 해고 등 조기퇴직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올해 평균 퇴직연령은 49.4세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셋째, 정년연장은 청년고용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다수의 연구에 따르면, 정년연장 근로자 1인당 최소 0.16명에서 최대 1.19명의 청년고용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연장은 세대간 일자리 경쟁에서 기성세대의 이익을 위해 청년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년연장으로 인한 청년고용 감소는 특히 대기업과 공기업 등 청년들이 원하는 고임금의 좋은 일자리에서 두드러진다. 청년실업률이 5.1%로 전체실업률 2.1%의 배가 넘고, '쉬었음' 청년이 44만명으로 역대 최대 수준인 현 상황에서 정년연장은 우리 사회의 미래인 청년들에게 큰 좌절을 안길 수 밖에 없다.

현재의 고용·임금제도 하에서 정년연장은 불공정한 격차를 확대하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년연장보다 법제도 개선을 통해, 나이와 상관없이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으면 원하는 기간 동안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고용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다수의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기존의 고용관련 법적 규제를 완화하여 기업의 인력 운영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이 고령인력을 부담없이 채용·유지할 수 있도록 해서, 고령인력 수요를 확대해야 한다. 정년연장 법제화는 이에 역행하는 규제 강화이다. 기업이 정년연장, 정년폐지, 재고용 등 다양한 대안 가운데 자사 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동시에 나이나 연차가 아닌 직무 가치와 성과를 기준으로 임금이 결정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고령 근로자의 계속고용과 재취업 기회를 확대하고, 기업이 인력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파견규제를 완화해 고령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업무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근로자 평생학습 체계와 직업훈련을 강화해서 재취업 역량을 높이고, 이들에게 적합한 일자리 매칭을 지원하는 취업지원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고령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과 사회보험료 지원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고령자 고용을 장려하는 고령자 고용 친화 정책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김강식 한국항공대학교 명예교수·전 질서경제학회 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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