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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플랫폼 규제, 칼이 아닌 채찍이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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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7. 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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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선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쿠팡의 연매출이 41조원을 돌파했다. 네이버와 함께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65%를 점유하고 있다. 정부가 플랫폼 규제를 서두르는 이유다. 하지만 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모델로 한 사전규제법은 우리 시장 현실과 맞지 않는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플랫폼 시장은 이미 치열한 경쟁 중이다. 국내 선두 기업을 알리와 테무가 맹추격하고 있다. 모두 외국계다. 네이버조차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미국 기업 차별"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새 규제는 관세 보복의 빌미만 제공한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플랫폼 규제를 무역장벽으로 규정하고 관세 인상을 검토 중이다. 지금 진행 중인 한미 무역협상에서 플랫폼 규제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새로운 규제법 제정은 협상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더욱이 플랫폼 기업들은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 인프라다.

우리에겐 이미 충분한 규제 도구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구글에 421억원, 쿠팡에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거래법, 전자상거래법, 정보통신망법 등 기존 법률만으로도 플랫폼의 불공정행위를 충분히 다룰 수 있다는 증거다. 문제는 법이 없는 게 아니라 집행력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본보기 제재'가 새로운 법 제정보다 효과적이다.

플랫폼 업계도 자율규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플랫폼 자율규제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으며, 업계도 소비자 보호와 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심지어 중국 기업인 알리와 테무도 제품안전 자율협약에 동참했다. 사업자들도 규제 리스크를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제 필요한 건 "예측가능한 불확실성"이다. 언제 어디서 규제의 칼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압박감 속에서 기업들이 스스로 행동을 개선하도록 하는 것이다. 과징금보다는 행위 중지 명령이, 처벌보다는 피해 보상이 우선이다. 반복 위반 시에만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면 된다. 무엇보다 글로벌 공조가 중요하다. 한국 단독 규제는 글로벌 기업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한국 시장은 작은 파이일 뿐이다. EU, 미국, 일본과 함께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목매지 말고 "세계와 함께"를 추구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 직원들은 본사 설득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만의 규제가 글로벌 확산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21세기형 규제는 다르다. CEO와 먼저 만나 자율개선안을 받고, 협력하는 기업에겐 규제 샌드박스와 세제 혜택을 준다. 거부하는 기업에겐 기존 법률로 강력히 대응한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은 규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똑똑하게 규제한다." 이것이 우리의 메시지여야 한다. 미국에겐 "새 규제는 없다"고 하면서, 플랫폼에겐 "자율 개선 없으면 기존법으로 강하게 대응한다"는 압박을 가할 수 있다.

플랫폼 규제의 목적은 플랫폼을 죽이는 게 아니다. 더 나은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규제는 망치가 아닌 수술칼이어야 하고, 칼보다는 채찍이어야 한다. 글로벌 가치사슬 속에서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협력과 경쟁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갈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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