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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치의 변화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최근 유럽에서는 반이민 정서를 앞세운 정당들이 연이어 의회 진입에 성공했고, 미국의 트럼프 현상 역시 대중 우선주의의 전형으로 거론된다. 선동적 구호와 단순한 해법을 내세운 포퓰리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정치 지형은 빠르게 요동치고 있다. 여러 연구는 전 세계 국가의 상당수가 이미 포퓰리즘 지도자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며, 주요국의 포퓰리즘 지수가 지난 20년 사이 뚜렷이 높아졌다고 보고한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일부 서구의 연구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한국 포퓰리즘 정치의 본격적 출발점으로 본다. 이후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선거 때마다 현금성 지원 약속이 경쟁적으로 쏟아졌고, 연금·노동·교육 같은 구조 개혁은 번번이 뒷전으로 밀렸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현금성 복지 확대와 공공부문 일자리 중심의 재정 지출이 빠르게 늘었고, 이를 견제해야 할 보수 정권들 또한 미래 개혁보다 선심성 감세와 단기 지원책에 기댔다. 윤석열 정부 역시 5대 필수 국정과제를 내세웠지만, 한미 금리 차 확대와 같은 복합 변수 속에서도 부동산 가격 방어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포퓰리즘의 가장 큰 피해는 개혁의 지연과 투자 기회의 상실이다. 대표적 사례가 국민연금 개혁이다. 고령화로 재정 건전성이 흔들리는데도 정치권은 표심을 의식해 미봉책을 반복하고 있다. 교육 개혁 역시 이해관계의 충돌을 우려해 손대지 못한 채, 15년 넘는 등록금 동결이 대학의 경쟁력과 연구 생태계를 허물었다. 여러 실증 연구는 포퓰리즘이 제도적 불안정성을 높여 기업의 연구개발과 혁신 투자를 위축시키고,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훼손한다고 지적한다. 또 일부 국제 비교 연구는 포퓰리즘 정부가 장기 집권한 국가에서 1인당 GDP가 의미 있게 낮아지는 현상을 보고한다.
재정 측면에서도 경고등이 켜졌다. 단기 표심을 겨냥한 소비성 지출은 국가채무를 빠르게 늘리고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이미 1천조 원을 넘어섰고, 잠재성장률은 하락 추세다. 선거 때마다 전 국민을 상대로 보편적 현금을 약속하는 방식은 국민을 정부에 의존하게 만들고, 제한된 재원을 미래 투자 대신 일회성 소비로 소진하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 연금·노동·교육·규제 개혁과 같은 구조 개선은 단기적으로는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과 성장, 세대 간 형평을 동시에 개선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선거 주기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재정준칙을 강화해 단기 인기 지출을 제도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둘째, 연금·노동·교육 개혁을 정치 공방의 대상이 아니라 초당적 합의 과제로 격상하고, 독립적 기구를 통해 설계를 고도화해야 한다. 셋째, 대학·연구 생태계의 비용 구조를 투명하게 개편하면서 등록금 정책의 합리화를 통해 교육과 연구의 기반을 복원해야 한다. 넷째, 산업 전환과 기술 혁신에는 선택과 집중 원칙을 적용해 불용성 보조금을 줄이고 민간의 위험 감수와 투자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다섯째, 정책 설계 전 과정에서 증거 기반 평가를 의무화하고, 공약이 지출·성장·세대 분배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공개하는 절차를 법제화해야 한다.
포퓰리즘은 달콤하지만 값비싼 선택이다. 단기적 위안을 주지만, 장기적 비용을 치르게 한다. 한국이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성장과 번영을 선택하려면, 인기 경쟁을 덜어내고 불편하지만 필요한 개혁과 투자에 나서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성진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최성진 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및 석사, 중국 베이징대학교 경영대학 경영전략 박사. 현재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연구 분야는 기업의 비시장 전략, 중국의 산업 정책, 전환기 경제사. 대표 저서와 번역서로는 '언더그라운드 이코노미'와 '차이나 매니지먼트'. 현재 '경영학연구'의 국제경영분과 편집위원장, Asia Pacific Business Review의 한국 지역 편집장으로도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