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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호흡기 단 석유화학, 대수술 논의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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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기자

승인 : 2024. 12. 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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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NCC 전경./여천 NCC
이제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위기'는 싸이클이나 변수가 아닌, 새로운 국면에 마주한 상수라는 확정적 진단을 받고 있다. 수출 대표 주자라는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업황이 언젠간 회복될 것이란 기대는 접은지 오래다. 중국이 석유화학 산업 기초 원료인 '에틸렌' 생산 능력을 있는대로 끌어올려 글로벌 공급과잉을 맞았고, 원가 경쟁력에서 우리가 비벼볼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현실이다. 곤두박질 치고 있는 국내 대표 화학기업들의 실적이 그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소위 구조조정안은 업계가 예상했던 것 보다는 더 원론적 차원에 그쳤다는 평가다. 맞다. 수년 후를 내다보고 천문학적 재원이 투입 되는 초대형 장치산업을 재편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정국 혼란 속 책임을 미루고 호흡기로 연명해 가는 정부의 입장도 심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정부는 범용 사업을 중단하고 스페셜티 사업을 확장하라고 한다. 기업들이라고 몰라서 안했을까. 질서 있는 생산량 감축과 설비 폐쇄도 어렵지만 수년 후 체력이 좋아질 수 있는 유망 먹거리에 투자하는 일은 그야말로 장밋빛 청사진일 뿐. 그렇다면 기업들이 용기를 낼 수 있게 정부가 도전에 대해 응원하고, 결과에 대해 보상해 주면 어떨까.

정부는 일단 사업 전환을 위한 정책금융 자금을 3조원 가량 공급하고, 나프타나 나프타 제조용 원유 등에 대한 비용 절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호흡기를 달아준 셈이다. 시간은 벌 수 있지만, 재편을 위한 가이드로는 한참 아쉽다.
이미 갖춘 설비를 어떻게 줄이고, 누가 떠맡아야 할까. 과거 일본과 같은 적극적 구조조정을 고려해 볼 만하다.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일본 석화업계는 우리와 비슷한 구조를 갖췄었다. 그러나 일본은 1970년대부터 움직였다. 석화업계에 독점 금지법을 배제하면서 수급 개선에 나섰고, 1980년대에는 과잉설비 처리 등을 정부가 주도했다. 특히 1990년대 이후부터 기업 합병 및 사업부문 분리 통합을 주도하고 생산을 줄이면서다. 이후 2010년대에는 범용 설비를 과감히 통폐합해, 공급과잉으로 인한 위기를 그나마 피해갔다.

추격이 어려운 스페셜티 산업으로의 전환은 더 어려운 일이다.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 기업들의 합종연횡을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무너진 일본 반도체 산업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토요타·소니·소프트뱅크·미츠비시 은행 등 공급과 수요에 연계 된 기업들이 다 달려든 반도체 연합 '라피더스'를 떠올려야 한다. 혼다와 닛산의 결합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산을 통폐합하거나 공동운영케 한다면 그 미래를 위한 사업 역시 손 잡을 수 있다. 어렵지만 머리를 맞대고 큰 그림을 그려내야만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K-석유화학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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