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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트럼프 대통령도 몰랐던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중단 사건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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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8. 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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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종 국제분쟁전문가·대전대학교 특임교수
지난 7월 1일 미 국방부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던 패트리어트 미사일, 155㎜ 포탄, 다연장로켓(GMLRS) 등 주요 군수물자의 지원을 갑자기 중단했다. 무기 비축량에 대한 '안보 역량 검토'가 필요하여 '잠정 중단'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나 우크라이나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가 단독으로 내린 조치였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본인조차 그런 결정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돌발적인 지원 중단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NATO 동맹국들에 엄청난 혼란과 충격을 줬다. 때마침 러시아는 미국의 지원 중단 발표 직후인 7월 4~5일 사이에 이란제 드론 539대와 미사일 11발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전역을 맹렬히 두들겼다. 방공무기의 예상치 못한 부족으로 민간인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트럼프의 혼란스러운 행보를 틈타 우크라이나를 더욱 강하게 공격하여, 우크라이나인의 사기를 꺾고 서방의 결의를 시험하려 한다고 우려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백악관은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입장을 바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재개한다고 긴급 발표했다. 백악관은 처음부터 무기 지원을 전면 중단한 것이 아니라 잠정적 '능력 검토' 과정의 일환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국 정책의 신뢰성은 회복하기 힘들 만큼 손상을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나는 무기지원 중단에 책임이 없다"고 해명했다. 최근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한 후 무기 비축량을 검토하도록 지시했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공급 중단을 명령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쟁 중인 외국 지도자에게 이런 해명을 하는 자체가 매우 부자연스럽다.

이러한 사상 초유의 대혼란이 발생한 배경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심각한 NSC 기능 장애, 그리고 백악관 내 소수 최측근 중심의 폐쇄적 정책결정 구조가 있다. NSC는 본래 미국 외교안보 정책을 종합적으로 조율하며, 대통령에게 전략적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 기구다. 그러나 트럼프는 NSC를 '딥스테이트의 잔재'로 규정하며,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에게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직시키고 NSC 인원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 놀랍게도 익명의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NSC는 궁극의 딥스테이트다. 이제 마코 루비오와 딥스테이트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우리 목표는 딥스테이트의 해체(gutting)다." 이제 NSC는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가진 소수 문제에만 제한적으로 관여할 뿐, 주요 안보정책에서 사실상 배제된 상태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적 충성심을 바탕으로 백악관 내부의 소수 핵심 측근들, 이른바 '웨스트윙 카르텔'을 중심으로 비공식적인 의사결정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그 핵심은 루비오 장관과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의 투톱이다. 가히 '좌 마코, 우 수지'의 형국이다. 공식 기구인 NSC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국방부·국무부·정보기관과 같은 주요 기관들과의 정상적인 정책 조율도 크게 약화되었다. 이번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중단 사태 역시 국방장관 헤그세스가 대통령의 의중을 넘겨짚어 추측하여, 일방적으로 독단적 결정을 내린 결과였다. 대통령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중대한 외교안보 정책이 결정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 혼선과 즉흥적인 대응으로 가장 큰 이익을 취한 수혜자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무기지원 중단 사실이 알려진 시점과 거의 동시에, 전면 침공 이후 최대 규모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기 지원 재개를 긴급히 지시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이번 사건으로 미국의 안보공약과 정책 일관성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 미국이 국내 정치적 이유나 개인적 변덕, 그리고 측근들의 독단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 안보 정책을 변경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국제사회에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한미동맹도 이번 사건의 교훈을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일회성 에피소드가 아니라 구조적 기능장애의 징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북핵 위협과 중국 부상이라는 2중의 안보 위기에 직면한 우리로서는 미국 안보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무기 지원 중단-재개 해프닝에서 드러났듯, 이제 미국 정책의 예측 가능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내에서 '동맹파'나 '자주파' 같은 해묵은 이념 논쟁에 매몰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이 미국의 정책 혼란으로부터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스스로의 역량이 국가 생존의 기본이라는 사실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구조적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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