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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전관리 수준이 공간정보 품질관리의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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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17. 16:01

정형교 공간정보품질관리원장
정형교 공간정보품질관리원장
정형교 공간정보품질관리원장
국토 전반의 공간정보는 측량에서 출발한다. 도로와 철도, 도시개발과 지하시설물의 구축, 디지털 트윈과 자율주행 같은 미래 기술 역시 정확한 측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측량 작업은 대부분 현장에서 진행되며, 위험 환경과 맞닿아 있다. 교통량이 많은 도로 주변, 가파른 사면, 폭염·한파 등 기상 악조건, 또는 지하시설물 작업이 내포한 높은 위험 요인 등은 늘 잠재적 사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실제로 올해 초에도 지하시설물 관련 작업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현장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빠르게 끝내야 합니다." 공사 일정, 인력 운영, 예산 제약 등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작업 효율'은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이 효율성은 때때로 안전과 충돌한다. 안전장비를 착용하면 불편하다고 느끼고, 안전점검은 시간이 걸리며, 작업 위치를 조정하면 동선이 길어지기도 한다. 현장에서는 속도가 곧 성과라는 인식이 강할수록 안전수칙이 번거로운 절차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안전은 효율을 저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효율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 피해는 물론 작업은 중단되고, 일정은 장기화되며, 기관·기업의 책임 문제까지 발생한다. 측량 장비 파손, 데이터 오류, 재측량 비용 증가 등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단기적으로 줄인 시간보다, 사고로 잃게 되는 시간과 비용이 더 크다. 무엇보다, 어떤 작업 효율도 한 사람의 생명을 대신할 수는 없다.

측량 작업의 핵심은 '정확성'이다. 이러한 정확성은 집중력과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비롯된다.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자가 긴장하거나 불안정한 자세로 기기 조작을 한다면, 오차 발생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진다. 즉, 안전 확보는 곧 데이터 품질 확보이며, 품질은 곧 효율의 또 다른 형태다.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종 성과물의 생산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전을 '규정'으로만 보지 않는 태도다. 안전을 준수하는 것은 명령이나 규정 때문이 아니라, 현장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지켜야 하는 '문화'다. 그 문화는 "오늘의 빠름이 내일의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더욱이 측량 기술은 점차 고도화되고 있으며, 변화하는 작업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한다.

최근에는 안전과 효율을 동시에 높이는 기술적 기회도 확대되고 있다. 드론을 활용한 측량, 3D 스캐닝 기반 비접촉 측량, GNSS 기반 측량 기술 등은 위험한 지형이나 접근이 어려운 공간에서 사람의 직접 투입을 줄여준다. 이는 단순히 시간 단축을 넘어, 작업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데이터 정확성을 높이며, 장기적으로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기술 활용이 모든 사고를 방지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 위험에 직접 노출되지 않아도 되는 작업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이러한 기술 혁신이 소수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도록, 관리·감독기관은 측량업체의 기술 도입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과 장비지원체계 개선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또한 기술 활용의 문턱을 낮추는 제도적 뒷받침 역시 안전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제도적 측면에서도 개선할 부분이 있다. 현장 안전교육 강화, 작업환경 평가체계 고도화, 안전 미준수 시 책임 구분 명확화, 공공·민간 현장에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측량 안전 표준 마련 등이 필요하다. 특히 교육은 이러한 변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반복되고 축적되는 교육은 작업자의 판단력과 대응 능력을 높여 사고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감소시키게 된다.

공간정보의 품질을 관리하는 기관은 데이터 품질과 작업 안전을 별개의 영역으로 보지 않고 통합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품질이 안전에서 시작되고, 안전이 곧 성과물의 신뢰를 만든다는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측량 안전은 특정 기관과 작업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발주기관, 현장 책임자, 측량 기술자, 장비 제조사, 감독기관 등 모든 주체가 안전에 대한 공통된 인식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 안전을 지키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손해'로 보지 않고, 양질의 품질을 확보하는 '투자'로 이해해야 한다.

공간정보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첨단 미래산업의 핵심 인프라다. 작업 효율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다. 안전은 단순한 부가 요소가 아니라 공간정보 품질관리의 기준이 되는 핵심적인 척도(尺度)이며, 진정한 효율은 '빠르게 끝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일'이 우선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이제 우리는 효율성과 안전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단계를 넘어, 안전을 중심에 둔 효율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공간정보 산업이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을 때, 비로소 데이터의 신뢰성과 산업의 미래가 함께 보장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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