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이영조 박사의 정치경제 까톡] 끝나지 않는 고통: 브래디 플랜과 테킬라 위기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m3.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211010006799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2. 11. 18:09

슬픈 라틴아메리카 잃어버린 100년 (11)
이영조
이영조 전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회장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각국은 외채 상환 부담에 짓눌렸다. 외채협상의 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채권은행에 개혁 프로그램을 약속하지만, 실행과정에서 지켜내지 못해 새로운 협상이 필요해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브래디 플랜(Brady Plan)

이런 상황이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지속시키고 라틴아메리카의 신생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1989년 미국의 재무장관 니콜라스 브래디(Nicholas Brady)는 브래디 플랜으로 불리는 외채 조정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골자는 기존 상업은행들이 보유한 개발도상국의 악성 부채를 할인된 가격으로 안전한 채권(Brady Bonds)으로 전환함으로써 채무국의 상환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채권은행과 채무국은 크게 두 가지 채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첫째는 원금할인채권(discount bonds)으로 이자율은 유지하되 원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이자할인채권(par bonds)으로 원금을 전액 보존하지만 낮은 고정 이자율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채권의 원금은 미국 재무부의 선할인채권(zero-coupon bonds)으로, 이자는 세계은행의 지불약속으로 보증되었다.
브래디 플랜은 채무국의 부채상환부담을 줄였다. 담보 제공과 구조 조정으로 투자자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채무국들이 국제 금융시장에 다시 접근할 수 있는 길도 열어주었다. 상업대출의 약 48%를 Brady Bonds로 전환한 멕시코(1989년)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 여러 나라가 브래디 플랜의 혜택을 보았다.

하지만 브래디 플랜으로 외채위기에서 벗어나 이제 성장이 시작되는가 싶었던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1994년 12월 다시 한 번 금융위기에 노출된다. 이번에도 위기는 멕시코에서 시작됐다.

◇멕시코의 검은 12월(Black December): 테킬라 위기

1994년 12월 1일 에르네스토 세디요(Ernesto Zedillo) 정부가 출범할 당시만 해도 멕시코의 경제 전망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브래디 플랜에 따른 외채경감으로 외채상환부담도 크게 줄어들었고 북미자유협정(NAFTA)의 발효로 경상수지 전망도 밝았다. 재무장관 하이메 세라 푸체는 12월 8일 이듬해 멕시코의 국내총생산(GDP)이 4% 실질 성장하고 인플레이션은 5% 미만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일각에서 페소화가 고평가되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세라 푸체는 페소화 평가절하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불과 12일 뒤, 멕시코는 환율 변동폭을 13~15%로 확대함으로써 페소화를 사실상 평가절하했다. 당일 페소화는 변동폭의 하한인 15% 하락했다. 하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이틀 뒤 멕시코 정부가 페소화를 자유변동환율에 내맡기자 페소화는 그야말로 자유낙하했다. 핫머니가 빠져나가며 증시도 폭락했고 외환보유고도 바닥이 났다. 물가도 폭등했다.

위기가 글로벌 경제에 파급될 것을 우려한 미국과 IMF가 약 500억 달러의 긴급구제금융 패키지를 제공한 덕분에 디폴트는 면했지만 경제는 망가졌다. 페소화의 급격한 가치 하락으로 외환부채 상환 부담이 폭증했고, 금융시장은 붕괴 일보 직전까지 갔다. 심각한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급증하고,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었다.

페소화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치적 고려 때문에 무리한 경제정책을 고집한 데 있었다. 1990년대 멕시코 정부는 경제안정과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페소화를 사실상 달러에 고정시켰다. 미국과 멕시코의 인플레이션 격차 때문에 페소화는 점점 고평가되었지만 정부는 이를 방치했다. 고평가된 페소화는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무역수지 적자를 심화시켰다.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는 자본수지 흑자로 메웠다. 이 과정에서 멕시코 정부는 외국자본의 유지를 위해 페소로 표기되지만 달러에 연동된 단기외환채권(Tesobonos)의 발행을 늘렸다.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가 줄기 시작하면서 환율 유지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멕시코 정부는 더욱 많은 Tesobonos를 발행해 페소화를 방어했다. 하지만 이런 폰지 게임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었다. 12월 Tesobonos 채무 잔고는 300억 달러에 이르렀고 매주 멕시코 정부가 갚아야 할 돈은 2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런 상태에서 페소화 변동폭 확대로 페소화 가치 하락 신호가 나타난 순간 외환채권과 주식시장에 투자된 단기성 외국자본이 일시에 멕시코를 탈출하면서 발생한 것이 흔히 '테킬라 위기'(Tequila Crisis)로 불리는 페소화 위기였다.

◇테킬라 위기의 충격 (Tequilla Effect)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페소화 위기에 놀란 투자자들은 주변에도 유사한 위험 요인이 없는지 둘러보게 되었다. 그 결과 페소화 위기는 멕시코에 국한되지 않고,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이른바 '테킬라 효과'(Tequila Effect)라고 불리는 경제적 충격을 주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자국 통화를 달러에 1:1로 묶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었지만 다른 나라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국 투자자들이 라틴 아메리카 전체를 위험 지역으로 간주해 자본을 대규모로 회수했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에서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하며 인플레이션이 상승했다. 외환 시장 불안과 긴축 정책으로 지역 전체의 경제 성장이 침체했다. 고통은 계속되었다.

이영조 (전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