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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정선거’라는 방 안의 코끼리, 팩트 밝혀야만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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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1. 06. 18:02

송재윤1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2025년 푸른 뱀의 해가 밝았건만, 한국은 계엄의 화염에 휩싸여 있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의 오명을 쓰고 관저에 칩거 중이다. 판사 쇼핑 논란까지 일으킨 공수처는 결국 영장을 받아내서 대통령 체포를 시도했으나 대통령 지지자들은 관저 주변을 결사옹위했다. 대통령은 대체 왜 정치적 자살까지 무릅쓰며 비상대권을 발동해야만 했나?

모두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쉬쉬하는 주제를 영어로 '방 안의 코끼리'라 한다. 이번 비상계엄 정국에서 '방 안의 코끼리'는 바로 부정선거 의혹이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선관위를 질타했다. 국방부 장관은 부정선거 의혹 규명이 계엄의 목적이라 말했다. 지금은 국가원수·국군통수권자·행정부 수반이 대규모 부정선거가 자행됐다면서 '종북 반국가 세력'을 향해 전쟁을 선포한 상황이다.

대통령의 주장에 일말의 진실이라도 있다면, 한국의 선거 민주주의는 이미 뇌사 상태가 아닐 수 없다. 진정 그러하다면 '범죄자의 소굴'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반면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사로잡혀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라면, 대통령제의 처절한 종말이다. 대통령의 이런 행동을 저지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이 무엇이든 헌정사 최대의 국난이다.

대한민국 시스템의 건전성을 믿는 주요 언론과 국민 다수는 가장 간단한 설명을 정답이라 여기고 싶어 한다. 대통령이 음모론에 빠져서 국정을 망쳤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이 정신 착란을 일으켰다면 메스로 종양을 도려내듯 대통령 1인을 제거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부정선거 의혹은 계엄의 1차 원인이었음에도 '방 안의 코끼리' 취급을 당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바로 그 방 안의 코끼리가 이제 방 밖으로 나와서 온 동네를 마구 짓밟고 있는 현실이다. 모든 국민이 대통령이 미쳤다고 믿으면 쉽겠지만, 최근 아시아투데이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40%까지 치솟았다. 상당수 국민은 대통령이 부정선거의 증거를 확보하고자 계엄을 선포하고 선관위를 쳤다고 믿고 있다. 2023년 10월 20일 '주간조선'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유권자 38.2%, 보수층 52.5%가 투개표 조작을 의심한다. 2024년 12월 29~30일 MBC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거의 30%, 여당 지지층의 65%가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척결하겠다며 나라를 뒤집어 놓은 상황이니 우파 군중의 시위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불길에 기름 붓듯 대통령은 지지자들을 향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맹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직접 변론하겠다고 공언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재판정에 서서 미국의 트럼프 당선인이 그랬듯 선거가 조작됐다며 "도둑질을 멈추라(stop the steal)"고 부르짖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선거 부정을 의심하는 30% 국민은 더 열광적인 신념 집단이 되어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 원흉 반국가 세력'과 충돌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불신의 골이 깊어진다면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없다.

해결책은 오직 하나, 중앙선관위원회가 자발적으로 정부의 철저하고 완벽한 조사와 감사를 받아들여 선거관리의 무결성을 입증하면 된다. 지금껏 헌정사에선 6·25 북침설, 대한항공 858테러 안기부 자작극설, 천안함 미군 오폭설,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 등 국가 근본을 뒤흔드는 음모론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때마다 정부는 막대한 국민 혈세를 투입해 조사에 재조사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음모론을 퇴치해 왔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최고조에 달한 지금, 정부는 다시금 민주주의의 생명선인 선거제도의 관리 방식에 대해 '신뢰하지만 검증하는(trust but verify)'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

독립적 헌법 기관이라는 선관위는 그동안 코드인사, 채용 비리, 편파성 논란에 휘말렸으며 국정원에 전산망의 5%를 개방한 결과 낙제점(31.5점)을 받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효율적 K-선거 시스템을 전 세계로 수출한다는 선관위로선 치욕이며 불명예다. 부정선거 의혹 제기를 처벌하려 들기보단 차라리 이번 기회에 시스템을 100%로 공개하고 철저하게 점검받아 조직의 명예를 되찾는 길은 어떨까? 이제는 방 안의 코끼리를 잡아서 정글이나 동물원으로 보내야 할 때다. 선거 부정이 없었다면서 선관위는 대체 무엇을 꺼리는가? 당장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서버를 열라.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선 팩트를 밝혀내야 음모론이 사라진다.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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